송곡서원(松谷書院) : 평안북도 泰川郡 西城面 松谷里에 건립하였으나 현재는 멸실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 상량문
충신을 표창하고 현인을 숭상함엔 반드시 백세의 논정을 기다려야 하고 지리를 선택하여 사당을 지을 때에는 삼양(三陽)의 태회(泰回)를 따져야 하니 비단 후손들이 정성을 바칠 뿐만이 아니고 실은 이것은 후학들이 사모하는 마음에 따르는 것이다. 삼가 생각하건대 고려 원천부원군(原川府院君) 대은(大隱) 변(邊)선생은 성현의 후예로서 문무를 겸전하셨다.
적개(敵愾)의 훈공이 높아 운봉(雲峯)에서의 대첩(大捷)은 비문에 밝혀있고 존화(尊華)의 의리를 중히 여겨 위화도(威化島)에서 회군(回軍)을 도왔다. 국사가 날로 잘못되자 두문불출하여 대은(大隱)이라고 호한 것이 걸맞다. 옛 임금을 때때로 배알하였고 의리로 여러 신하에 대해 등지는 바가 없었으니 어찌 세 번의 대승을 얻은 공적뿐이겠는가? 실은 사은(四隱)과 덕을 같이 한 것이다.
명(明)을 향한 절의는 포은(圃隱)과 같고 창(昌)을 후사를 세우는 의론은 목은(牧隱)과 같이 하였으니 큰집의 기둥과 주춧돌 같으며 강을 건널 때의 배와 노와 같다. 술 마시는 자리에서 두 분이 노래 부르니 포은의 단심가(丹心歌)와 공의 불굴가(不屈歌)이다. 술을 차리고 뇌문을 지어 제사하며 벽제(碧蹄)를 향하여 울며 원통해 합니다. 대저 저 해와 달 같은 충정은 만민이 같이 본 바요, 춘추에 남겨질 절개는 백세가 지나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아, 어찌 하겠는가? 혼란하고 어두워 편치 못한 때여서 사적들이 어둡게 감추어지고 권신과 아첨하는 신하들이 사서를 편찬할 때에 충신과 간신을 제대로 구분하여 싣지 못한 것이 많은데다 제현들의 올바른 기록마저 깎여버렸다. 그러나 당시의 야사(野史)는 올바로 기재하고 있어 오늘날 후손들이 연보를 수찬할 때에 비로소 대현(大賢)의 입전(入傳)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하늘의 해가 다시 밝아져 천년동안 의심스럽던 옥사가 풀리고 땅속의 물도 따라와 있어 많은 사람이 흠모하는 마음을 불러 일으켰다. <缺一句>이제 영혼을 편안히 모시려 하므로 반드시 지리의 마땅함을 살펴야 한다. 생각건대 이 태천(泰川)은 선조 백작(伯爵)공이 받으신 고을이며 또한 송곡(松谷)은 증손이신 사의(司議)공이 거주하시던 곳이다. 오르내림에 잊지 않고 새겨둘 만한 곳이어서 향중의 정신은 반드시 여기 자손들의 마음에 있는데 하물며 여기에 이름난 선비가 계속 배출되는 것은 멀리 연원한 바가 있다 하겠다. 충신과 효자가 함께 이어 나오고 예속(禮俗)을 힘써 좋아한다. 그러므로 앞이 탁 틔어 밝은 곳을 취하여 집터를 닦고 드디어 목수와 장인을 불러 공사를 하였다.
신궁(神宮)의 밝은 빛을 세상에 비추고 제사의 공경함과 엄숙함을 본받으려 함이 어찌 충절을 숭상하는 것뿐이겠는가? 이는 도맥을 숭상하는데 관계되고 마침 의리에 순절하신 그 때의 경진(庚辰)일을 만나서 일진이 양길하여 풍모가 있다고 하는 학자들을 모아 산처럼 높고 물처럼 길게 이어지도록 위대한 곡조를 이미 만들어 대들보 올리는 것을 돕는다. 어영차 들보 동쪽에 떡을 던지니 충의가 당당하여 하늘 가운데 떠오른 해와 같다. 구름이 지나가며 이를 덮고 가린다고 어찌 싫어하겠는가? 밝은 빛이 혁혁하여 무궁토록 비추리라.
어영차 들보 서쪽에 떡을 던지니 술 마시며 부르는 불굴가(不屈歌)를 멍하니 들으니 애절하다. 나라 위한 충심은 갈아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길이 포은과 손을 맞잡으리라.
어영차 들보 남쪽에 떡을 던지니 송악산에 푸른 기운 띤 것을 멀리 바라보고 누가 정난공신(靖難功臣)의 우두머리냐고 물으니 고려사를 편수한 자 스스로 부끄러울 것이리라.
어영차 들보 북쪽에 떡을 던지니 태천(泰川)이 깊고 넓게 봉역(封域)을 굽이돌고 충의는 대대로 선조로부터 자손에게 전하여지므로 여기에서 제사를 드리고 그 덕을 크게 하리라.
어영차 들보 위쪽에 떡을 던지니 오르내리는 영령께서 모두 돌아보아 주셔서 만사는 단지 마음먹은 것을 따라 구해지니 사람들이 우러러보게 되고 친지들이 이를 향하여 좇을 줄을 알게 된다.
어영차 들보 아래에 떡을 던지니 많은 유생들이 받들어 먼지 떨어내고 물을 뿌려 정숙하고 공경하지 않음이 없어 제사지내는 일이 훤하게 밝아졌다. 생각이 마침내 끝이 없어 큰 복이 내려지리라.
엎드려 바라건대 상량을 한 후에 요사한 기운을 크게 쓸어버리고 문예의 기풍이 무성하게 일어나게 하소서. 부모를 친애하고 어른을 어른으로 모시며 사람마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 있게 하소서. 내 글로 글을 쓰고 도덕은 내 덕행으로 말하여 집집마다 악기를 치며 노래 부르게 하여 예의의 옛 나라로 회복하여 화평한 신세계를 만들게 하소서.
1930년(선생께서 순절하신 아홉 번째 경오년)에 후학 김면주(金冕周) 짓다
2)봉안문
태산(泰山)은 높고 태수(泰水)는 길게 흐릅니다. 신령은 내려오심을 늦추지 마시옵소서. 이 사당에 의지하시어 유풍(儒風)을 떨치게 하고 사방을 진정하시어 더러운 것 쓸어버리고 행복을 내리옵소서. 천추만세토록 여기서 영원히 평안하시옵소서.
3)상향 축문
충절은 일월을 꿰뚫고 의리는 춘추(春秋)를 잡습니다. 어두워지면 다시 밝아지는 법이니 영원히 아름다운 업적을 드날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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