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굴가 詩碑(경북 봉화군 봉화읍 거촌리 구양서원 내 소재)
1)불굴가(不屈歌)
穴吾之胸洞如斗 내 가슴에 말인 양 둥그렇게 구멍 뚫어
貫以藁索長又長 새끼줄로 길고 길게 꿰어서
前牽後引磨且戛 앞에서 당기고 뒤에서 끌어 갈리고 두들겨져도
任汝之爲吾不辭 네가 하는 대로 두고 나는 다 받겠지만
有欲奪吾主 우리 임 빼앗으려하면
此事吾不屈 이 일은 내가 굽히지 않으리
- 불굴가(不屈歌) 창작유래
집의(執義) 귀계공(歸溪公) 휘 희리(希李)의 전가록(傳家錄)에 이르기를 고려의 운수가 장차 바뀌려 할 때 태종(太宗)이 재상들을 초청하여 술을 마시고 스스로 노래로 제공들의 의중을 알아보려 하니 포은(圃隱)이 노래하기를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야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이시랴?” 하였다. 부원군(府院君)이 노래하기를 “내 가슴에 말인 양 둥그렇게 구멍 뚫어 새끼줄로 길고 길게 꿰어서 앞에서 당기고 뒤에서 끌어 갈리고 두들겨져도 네가 하는 대로 두고 나는 다 받겠지만 우리 임 빼앗으려하면 이일은 내가 굽히지 않으리.” 하였다. 이 두 선생의 뜻은 진실로 일월의 빛과도 다툴만하다. 포로(圃老)의 노래는 간절하고 측은함이 지극한데 선생의 노래는 곧고 굳세고 자른 듯하고 의연하며 확호하여 휘게 할 수 없고 늠름하여 함부로 범할 수 없다. 세상에 전하기를 이 두 분 선생의 화는 바로 이 노래를 부른 날부터 싹트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2)동국유거음 2수(東國留居吟 2首, 우리나라에 살면서 읊다)
7言8句로서 대은 자신의 출신과 동방의 문화를 찬양하고 그 무궁함을 기원한 것이다.
粵余華姓自軒嚳
昭載帝王世乘傳
初命玄禽天降聖
更朝白馬國封賢
大夫名伯周居祖
公子字邊出宋先
東土三支分一本
泰川中葉氏綿綿
“나는 화성(華姓)으로 제곡(帝嚳)과 헌원씨(軒轅氏)에서 나왔고
제왕의 역사서에 실려 밝게 전해오노라
애초에 현금(玄禽)에 명하여 하늘이 성인을 내리시고
왕조를 바꿔 백마를 내리니 나라가 성현에 봉하도다
대부(大夫)의 이름은 백(伯)으로 주(周)에 살던 조상이고
평공(平公) 아들 어융(御戎)의 자(字)는 자변(子邊)이었다
송(宋)에서 나와 먼저 동국(東國) 땅에 와서 세 갈래로 나누어지니
그 한 본이 태천(泰川)에 살고 중엽에 씨족이 이어 졌도다“
左衽乾坤夙避地
大東自有小中華
唐堯幷立傳檀木
周武所封繞槿花
島晩橫居風氣勁
海餘連蹈月煇斜
高山麗水吾先國
松茂承承祝永歌
“오랑캐가 천하를 짓밟아 일찍이 피난하니
대동(大東)은 스스로 작은 중화(中華)라
당요(唐堯)와 병립한 곳 단목(檀木)이 전하고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봉한 곳 무궁화 둘러있다
날 저문 섬에 비껴 누우니 바람 거세고
바닷가 거니노니 달빛이 기우는데
산 높고 물 맑은 내 선조의 나라
소나무 무성하듯 길이 복되기를 축원하노라“
3)한양유소음 4수(漢陽留所吟 4首, 한양의 유배소에서 읊다)
7언8구로서 동쪽에 와 공을 세웠으나 유배되었고, 우왕을 알현한 후에 풍파가 계속되고 복위의 뜻을 피력 하였고,공민왕부터 창왕까지 3대에 대한 충정의 마음과 곧은 지조를 읇은 것이다.
神州陸沈我俎東
文物箕邦尙有風
航海朝天昭大義
柵山闢地建殊功
一時失處王孫莒
三世奉歸太甲桐
眞僞且看來後事
彼蒼應識且丹衷
“신주(神州)가 멸망하여 나는 동으로 왔노라
문물이 뛰어난 기자(箕子)의 나라 여전히 그 기운이 있구나
바다를 건너 천자를 뵙고 대의를 비추며
산지의 개척에 뛰어난 공을 세웠다
한 때 처소를 잃은 왕손 거(莒)요
삼 년 만에 돌아온 동(桐)의 태갑(太甲) 후손이다
진위를 살핌은 후세에나 있을 일
저 푸른 하늘은 응당 붉은 충정을 알아 줄 것이다“
堂司七月享驪興
轉釀風波出始氷
公議方迎殷玉冕
隱憂將恐漢金藤
舊邦勝地雖怡養
沖嗣彛天合奉承
前年誰讀霍光傳
千里燕書更一層
“당사(堂司) 7월에 여흥(驪興)을 찾아뵈오니
도리어 풍파 일으켜 끝없이 계속 되는구나
공의(公議)는 은(殷)나라 옥면(玉冕)을 맞이하려는데
깊은 근심은 장차 한(漢)의 금등(金縢)을 두려워하노라
구도(舊都)는 승지(勝地)라 온화하게 다스릴 수 있고
어린 임금을 하늘에 떳떳하게 받들어 모시노라
연전에 누가 곽광전(霍光傳)을 읽었는가
천리 밖 연서(燕書)가 한층 새롭구나“
玄陵松柏載蒼旻
正正孫枝子葉春
桃李門前風共伴
竹梅園裡雪孤鄰
咨文中路私何坼
宗社上王義可遵
三世相承十六載
諸公孰不舊朝臣
“현릉(玄陵)의 송백(松柏) 푸른 하늘을 이고
정정한 새 가지에 떡잎이 나니 봄이로구나
문 앞 도리화(桃李花) 바람과 함께 벗을 삼고
정원에 매죽(梅竹)은 눈이 외로운 이웃이네
자문(咨文)을 중도에 사사로이 어찌 찢겠는가
종사(宗社)와 상왕(上王)을 의로서 받들고
세 임금 이어가며 16년을 모셨으니
제공들 누가 옛 조정의 신하가 아니라고 하겠는가“
自我居東四十春
貞忠直節獨求伸
花山月驛傳歌凱
威島耽羅擧義幡
曆事三朝天寵舊
策勛一等地望新
始何(五字缺)
未念中興孰効嚬
“내가 동쪽에 와서 산 지 40년
정충직절(貞忠直節)을 홀로 구하여 폈네
화산(花山)과 인월(引月) 역에 개선가를 전하고
위화도(威化島)와 탐라(耽羅)에서 의로운 깃발 올렸네
대대로 세 임금 모셔 하늘의 은총 오래니
책훈이 일등이라 명망이 새롭구나
어찌하여 (5字 缺)
중흥을 생각하지 않으니 누가 본받으려 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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